E-sens - The Anecdote 리뷰
E-sens(이하 이센스)의 The Anecdote(이하 에넥도트)가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여러 우여곡절들이 있었다. 대충 모두가 다 아는 얘기인 대마초 사건으로부터, 아메바 컬쳐와의 재계약 불발, 컨트롤 디스전, 그리고 그 이후의 대마초로 인한 재구속 - 수사 중 또 대마 흡입 - 1심 유죄 선고까지의 일련의 사건들은, 대중들로 하여금 이센스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게 하는데에 충분했다. 다시 잡혀들어가는 이센스를 보며 대중들은 '10년후에도 프라이머리의 독이 니 대표곡'*1 이라던 개코의 신랄한 디스를 떠올렸다. 이센스는 순순히 혐의를 인정했고, 이센스의 첫 솔로앨범 '에넥도트'의 발매는 그렇게 소문만 무성한 채 무산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와중에도 구치소 밖에는 앨범 발매를 위해 힘쓰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센스의 소속사인 비스츠앤네이티브스는 '앨범 자체는 작년 말(2014년 말) 발매 예정이었'으며 '법률자문을 받았으나 앨범 발매에 법적으로 문제되는 부분은 없다' 며 의견을 밝혔다. 어쨌든 만들어놓은 앨범은 발매를 해야하지 않겠느냔 말이다. 또 이센스에 대한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센스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센스의 음악을 - 2008년의 믹스테입 열풍, 꽐라 열풍, 슈프림팀 활동, 그리고 프라이머리의 '독'까지 -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소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이센스의 앨범을 기대하고 있었고, 미리 들어봤다는 딥플로우의 '한국의 일매틱이 될 것'이라던 트위터는 그들의 기대를 한층 더 달아오르게 하는데에 충분했다. 결국 구치소에 있는 이센스의 동의를 얻어, 에넥도트는 2015년 8월 발매되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옥중앨범'이라는 위업(?)을 달성하면서.
에넥도트의 핵심은 간결함에 있다. 에넥도트는 다른 모든 것을 최소화한다. 앨범 커버에는 사진이나 그림 한장 없이 K.M.H.(이센스의 본명 강민호의 이니셜이다) 세글자만 적혀있을 뿐이다. 트랙리스트를 봐도 심플하기 그지 없다. 그 흔한 보컬/훅 피처링 하나 없고, 어떤 이름 모를 래퍼(Kim Ximya)의 랩 피처링 한 절만 기용돼있다. 비트 역시 이 간결함을 그대로 유지한다. 미니멀한 비트는 음악적 공간을 채우기보다는 비우는 방향으로 짜여져있다. 비유하자면, 하나의 울림통을 구축한다.
이렇게 비워진 음악적 공간 위에 이센스의 담담하고도 시니컬한 랩이 얹어진다. 이센스의 미세한 박자 운용 하나, 단어 하나가 울림통을 타고 증폭된다. 마디를 쪼개고 또 이어붙이는데에는 이센스만큼 잘하는 사람이 없다. 느슨하게 늘어지는 플로우와 비정석석이고 불규칙한 라임·리듬 배치를 통해서 이센스는 랩의 형식미를 지키지 않는 듯 지키는 선을 유지한다. 리듬은 무너지는 듯 하면서 복구되는 양상으로 긴장감을 형성한다. 형식의 미와 파격 사이에서 이센스의 랩은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곡예를 이어나간다. 줄타기를 해간다.
느슨하게 외줄타는 랩은 에넥도트의 내러티브와 어색함 없이 어우러진다. 에넥도트에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센스의 생각들과 인생사가 담겨있다. 아무 생각 없던 학생 때부터, 노가다 판 전전하던 시절, 영등포 옥탑방 이야기, 그리고 차례차례 한발씩 한국 힙합의 중심부로 진입하던 그 일화들을. 그리고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홀로 남은 지금의 심정까지, 이센스는 비트 위로 이야기들을 옮겨놓는다. 그 이야기들에서 드러나는 것은 이센스가 그동안 믿고 기대왔던 것들, 이센스를 움직였던 것들이다. 가치관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건 돈이었고, 명예였다. 일면은 여자이기도 했고, '뭔가 재미있는 것'이기도 했으며, 가장으로서의 압박감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센스의 목소리는 어쩐지 아련하다. 그것이 단순히 옛날 이야기여서가 아니다. 자신이 추구해왔던 그 모든 것들이, 그토록 선명하고 확연해보였던 것들이, 이제는 흐릿하게 바래졌기 때문이다. 슈프림팀 활동을 통해 얻어본 그것들이 결코 '어떤 누구보다 내가 싫어하던 그 짓들'*2 까지 해가면서 얻을만한 것이 아니었다는 회환이다. 그렇다면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 랩을 해나가야 하는가. 그의 '롤모델'*3 조차 그에 대한 답을 주지 못했다. 그 어떤 것도 믿고 나아갈 수 없는 순간에 이센스는 봉착했다. 에넥도트에 배여있는 짙은 염세와 허무의 냄새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그것과 닮아있다.
이센스를 지금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가. 돈도, 명예도, 여자도, 한국힙합에 정점에 서겠다는 그런 야망도 아니라면 무엇인가. 아닌 것들을 제하고 나면 남는 것은 얼마 없다. 랩 유희가 주는 순수한 재미이거나, '내가 내 자신의 주인이 되는 순간'*4이 주는 해방감 같은 것이리라. 또는 가짜는 될 수 없다는 그 강박감일 수도 있겠다. 무엇이 되었건 진실해야한다는 힙합의 정언명령에 충실한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답을 알 수 없다. 정작 이센스 역시 아직 잘 모르는 듯 하니깐. 몇번이나 그 감정의 공허를 대마연기로 채우려 했으니깐.
이센스는 '나에게 의미있는 음악'을 하겠다 말했다. 또 이센스는 '요즘 한국 힙합 듣고 좋은 적이 없었네' 라 말한다. 그렇게 이센스는 한국 힙합 트렌드와 정 반대되는 앨범을 만들었다. 그 흔한 언어유희도 없는, 돈 자랑, 여자 타령 하나 없는 앨범을 만들었다. 정공법으로, 간결한 비트에 그의 삶과 허무를 얹어 랩으로 흘려보내는 것으로, 이센스의 목소리는 듣는 이들의 마음 속으로 파고들어 순수하고 진실한 울림을 준다.
11월 말, 이센스의 상고심이 종결되었다. 1심에서의 형량인 1년 6개월이 유지되는 것으로 확정되었고, 이센스는 상고하지 않았다. 앞으로 이센스의 행보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센스는 그 허무의 끝에서 답을 찾아낼수 있을 것인가. 다시 나온 뒤에는 마약을 깔끔하게 끊고 음악활동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인가. 사이먼 도미닉은 정말 이센스를 친동생처럼 돌봐 절대로 다시는 마약하지 못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가 이센스에 대해서 선명한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욕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기대하게 되는 그 마음. 존나 잘하는 새끼가 왜 씨발 마약을 해서 이지랄이냐는 그 마음. 그건 아마도 우리가 지금 한국힙합 사상 유래없는 재능을 가진 래퍼의 미래에 대해 논하고 있기 때문에 드는 마음일 것이다.
*1 Gaeko - I can control you
*2 Primary - 독(feat. E-sens)
*3 Gaeko - I can control you, E-sens - True Story
*4 E-sens - M.C.(feat.Gae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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