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아웃] 리뷰
- How to Embrace your emotions
1. 픽사의 장기가 돋보인 영화였습니다. 뇌의 기능 하나 하나를 의인화한다는 발상 자체는 전에도 있었던 것이지만(우디 앨런의 everything you always wanted to know about sex나), 전에 있었던 발상이라고 해서 그것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되려 발상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구현하고 전개해내느냐가 중요하니깐요. 픽사는 바로 그런 지점에서 강점이 있는 회사입니다. 신선한 소재를 가져와 구체적이고 탄탄한 설정을 구축하고, 그 위에 따뜻한 시선으로 '이야기'를 짜내어가는 건 픽사의 전문분야죠. [인사이드 아웃]도 바로 그런 픽사의 장점을 잘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2. 영화는 인간이 가지는 여러 감정들을 각각의 캐릭터로 그려냅니다. 관객들은 라일리의 감정들이 벌이는 소동을 바라보면서 라일리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고요. 말을 만들어 보자면, 관객들의 시선은 라일리를 정면에서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라일리의 뒤에서 보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뒤통수에서 바라보는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구조는 굉장히 영리한 시점 설정입니다. 인물의 세세한 '감정선'을 한올 한올 끌어내어서 보여주게 되니깐요. 우리가 보통 영화를 볼 때는, 인물의 발화/표정/상황 등의 부수적인 정보를 통해서 인물의 감정을 '유추'하게 됩니다. 그렇게되면 놓치는 사람들도 많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많고, 감정선 자체를 못따라오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인사이드 아웃]의 시점구조는 이런 감정선을 감춤없이 보여주게 됩니다. 인물의 내적갈등을 투명하게 볼 수 있는 겁니다.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쉬워지는 거죠.
인물의 감정을 이해하게 되면 공감도 쉬워집니다. 공감이 쉬워지면 몰입도도 높아지고요. 그렇게되면 이 이야기는 라일리만의 이야기가 아니게 되는 겁니다. 이제 이건 '나'의 이야기입니다. 감정 뒤숭숭하던 어린 시절과 방황하던 사춘기 시절의 이야기가 되는 겁니다.
3. 이 영화는 우리에게 '모든 감정은 그 자체로 의미있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기쁨이는 말할 것도 없고, 소심이도, 까칠이도, 버럭이도 그리고 하다못해 가장 쓸모없어 보였던 슬픔이도 다 각자 할 일이 있고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는 거죠. 단순히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해서, 그 존재 자체가 부정되진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여기서 저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감정 문제에 대해서 얘기를 좀 해보고 싶네요. 저는 이게 유교문화의 영향인건지 아니면 청교도적인 문화의 영향인지 모르겠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감정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정적인 것은 비이성적인 것이고, 열등한 것이고, 억눌러야 하는 그런 것인것처럼 대하는 분위기를 말하는 겁니다. 대표적으로 '사내새끼가 운다' 같은 표현이요. 아니면 '화병'이나, '한' 같은거요. 화를 내야하는 데 내지를 못하니깐 울화병이 생기는 거고, 슬퍼해야하는 데 슬퍼하질 못하니깐 한 같은게 생기는거죠. 그게 '잘못된' 거라고 생각하니깐. 화내지 말아야하고, 웃어야하고, 둥글둥글하게 살아야하고. 그렇게 '기쁨'이 강제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사이드 아웃]이, 그리고 이 영화의 인기몰이가 저는 반갑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감정을 직시하고, 인정하고, 솔직해지는 것에 대해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될 테니깐요. 단순히 감정을 찍어 눌러 참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에 대해 더 잘 바라보고 더 잘 이해하게 되면, 상대방의 감정에 대해서도 역시 더 잘 이해하게 되겠지요. 그렇게 이 사회가 좀 더 부드러워지고, 사람다워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4. 많은 사람들이 '빙봉'이가 사라질 때 울었다고 하던데, 저는 그보다 샌프란시스코로 이사온 첫날 밤 자기 전의 장면이 기억에 더 남았습니다. 라일리의 감정들이 우글우글 들끓다가 터지려는 그 순간에, 부모님이 칭찬해주시는 장면이요. 그럴 때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으면 참 서운하잖아요? 내가 이렇게 힘들게 나를 버텨내고 있는데, 머리 속에 만감이 교차하고 금방이라도 끓어넘칠 것 같은데, 대부분의 경우 말 한마디 못듣곤 하죠. 그게 그냥 당연하다는 듯 넘어가지는 경우도 많고요. 바로 그럴 때에 이렇게 수고했다고 인정하고 칭찬받으면 참 기분이 좋습니다. 그건 상대방이 그만큼 나한테 관심이 있다는 뜻이 되고, 나는 상대가 그만큼 나를 챙긴다는 것을 알게 되죠. 아이들은 그런 관심과 사랑으로, 그리고 힘든 것을 이겨낸 뒤의 칭찬으로, 성장합니다.
5. 누군가가 이거 아카데미 올라가지 않겠느냐 하던데, 저도 그 의견에 동의합니다. 아카데미 할배들의 취향 상 이번에도 물론 본상은 못받겠지만요. 아무튼 만약 그렇게 된다면 피트 닥터는 두번이나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라가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게 되는 겁니다. 애니메이션이 그저 유치한 무언가가 아니라, 실사 영화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하나의 독립 작품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서 기쁩니다. [라따뚜이]에서 나오듯, Not anyone can become a great artist, but a great artist can come from anywhere 한 거니깐요. 그리고 그건 영화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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