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장이 맷 데이먼의 화성에서 살아남기
- 이토록 산뜻한 인간 찬가를 보았는가
근 미래, NASA는 화성에 유인 탐험대를 파견하는 데에 성공했으나, 부득이한 이유로 급하게 철수하게 되었고, 그 사이에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 대원을 두고 가야만 했다. 하지만 마크 와트니 대원은 바이탈 신호기가 고장 난 채 살아있었고, 그는 화성에 홀로 남게 되었다. 이제 와트니 대원은 화성에서 구조대가 올 때까지 살아있어야 하고, NASA는 와트니 대원을 살리기 위해 하루라도 빨리 화성으로 구조대를(아니면 적어도 식량이라도) 보내야한다. 영화 [마션]은 화성과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거대한 스케일 속에서 빛나는 인간 정신력의 극한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상하다. 이런 종류의 영화라면 대개 웅장하고 진지하고 심각하고 긴박감이 철철 넘쳐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 공식이다. 최근 우주를 배경으로 하여 나왔던 [그래비티]와 [인터스텔라]가 그러하였다. 그러나 그와는 정 반대로, [마션]은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하고 가벼운 분위기를 유지한다. 마크 와트니는 시종일관 입을 놀리고, 농담을 던지고, 누가 볼 것이라는 보장도 없는 연구소 캠을 보며 기록을 남기고, 개드립을 친다. '끊임없이 농담을 던지는 백인 남성 캐릭터'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마션]은 질척거리지도 않고, 최루성 감동장면 하나 넣지 않은 채 끝까지 간다. 이쯤 되면 '산뜻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유쾌하고 산뜻한 분위기에서 조명을 받는 것은 ‘과학’과 그것을 향한 과학/공학자들의 열망이다. 주인공인 마크 와트니에게는 화성에 홀로 남겨졌다는 절망감만큼이나 화성에서 최초로 경작을 하게 되었다는 흥분감이 큰 것으로 보인다. 화성에서의 경작이라니! 천문-공학-식물학자로서 평생 꿈꿔왔던 것을(마크 와트니는 심지어 그것에 대한
논문까지 썼다) 해볼 기회가 우주 최초로 주어진 것이니, 바로 이것이 로망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이런 과학자들의 로망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패스파인더이다. 최초의 화성 탐사 로봇인 패스파인더·소저너는 그 자체로서도 무수한 천문덕후들의 로망이었으며, 그것을 발굴해내는 마크 와트니/빈센트 카푸어의 모습은 사뭇 잊힌 고대 비밀병기를 꺼내오는 듯하다. 화성-지구간의 16진법 아스키코드 통신이나, 지구 중력을 그대로 이용해 헤르메스호를 돌려보내는 방법을 연구한 리치 퍼넬이나, 지구에서 먼저 로버를 개조해보고 화성에 그대로 알려주는 JPL 연구팀의 모습에서도 느껴지는 것은, 문제 상황에 대한 해결책들을 과학자들 스스로 만들어냈다는 희열감이다. 이를 과학에 대한 열정이라 불러도, 혹은 '덕심'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렇게 [마션]은 과학적임을 자처했었던 [인터스텔라]보다 [마션]은 더욱 과학적인 영화가 된다.
[마션]은 단순히 '과학영화'로 끝나지 않는다.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화성의 풍경을 인간의 눈높이에서 조명하고, 그를 통해 화성의 광활함과 거기에서 오는 막막함까지도 보여준다. 이 넓고 황무한 행성에서, 작은 인간인 마크 위트니가 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마크 위트니는 하루에 겨우 몇 시간 이동할 수 있을 뿐이며, 그것도 로버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슈트 없이는 밖으로 나갈 수도 없으며, 혹여나 폭발사고라도 날 경우 무력하게 화성산 이산화탄소를 들이마시며 질식사하게 될 것이다. NASA의 인간들도 마찬가지이다. 행성 간 이동에 걸릴 날짜를 줄일 방법은 없다. 지구도 화성도 인간이 어떻게 조절할 수 없는 것들로, 그저 상수로서 존재하는 것이기에. 이렇게 자연은 광대하고 압도적이며, 인간은 미약하고 작은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마션]은, 여기에서 상수가 아닌 변수에 집중한다. 인간은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한 문제 한 문제씩, 이성적 사고와 과학적 지식을 가지고 풀어가는 것이다. 여기서 보이는 태도는 다름 아닌 '성실함'이다. 어떤 요행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운에 맡기는 것도 아닌 성실함. 끊임없이 데이터를 분석해나가고([마션]에서는 유독 숫자로 된 데이터가 많이 나온다. 이는 이 문제적이고 공포스러운 상황을 어떻게든 이해가능하고 대처 가능한 것으로 환원시키고자 하는 노력이다) 공학적인 방법으로 개선해나간다.
마크 위트니는 화성 조난생활을 시작하자마자 유일하게 타는 것이라며, 십자가상을 불태워 연료로 써 버린다. 마크 위트니가 십자가상을 보며 'I'm counting on you'라 농담한 것은 전적으로 신이나 다른 요행에 의존한 적조차 없는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농담이다. 이 노골적인 장면은 되면 리들리 스콧 감독의 전작 [킹덤 오브 헤븐]에 나오는 ‘살라딘’을 연상시킨다. [킹덤 오브 헤븐]에서 이슬람권의 수장으로 나오는 살라딘은 철저한 인본주의자로서, '전투의 결과는 신에게도 달렸지만, 군사들의 준비, 숫자, 건강과 식수의 보급에도 달렸다'고, 전투에서 패배한 것은 ‘죄 때문이 아닌, 준비가 덜 되었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감자의 숫자를 세고, 비닐을 치고 흙을 퍼오고, 하루 이동가능 거리를 계산하며 생존을 위해 뚜벅뚜벅 나아가는 마크 위트니의 모습이 이와 닮아있다. '요행'을 통해 어떻게든 발사일을 앞당기려 했던 NASA국장이 보기 좋게 실패한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인류는 요행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션]을 과학에 대한 찬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인간 찬가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거창한 '인간찬가'라는 표현은 [마션]과 어째 어울리는 것 같아 보이질 않는다. 왜냐면 마크 위트니는 시종일관 웃고 떠들고(주로 혼자) 농담을 던지고, 흥분하면 쌍욕을 퍼붓고, 자신을 구하러 온 대장에게도 만나자마자 '음악 취향이 너무 구리다' 농담을 던지니깐. [마션]은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며 즐기지 않아도, 장중함과 위대한 무엇을 생각하지 않으며 봐도 좋을 영화이니깐. [마션]은 그런 영화다. 이 모든 내용이 거북하거나 무겁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점, 괜스레 각 잡고 감동 짜내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 산뜻하고 유쾌한 인간찬가라는 점. [마션]의 매력은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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