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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12년
관람일 3월 6일
'노예 12년'
0. 배우진이 묘하게 화려합니다. 주인공인 치워텔 에지오포는 처음 들어봤는데, 주조연에 베네딕트 컴버배치, 마이클 패스밴더, 브래드 피트(제작에도 관여)가 있습니다. 셋 다 명배우에 존잘입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조상이 대규모 노예농장을 소유했어서 그에 대한 속죄의 의미로 참여했다고 하네요.
1. 노예제도는 자유와 구속의 문제이지만, 단순히 자유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저는 그보다는 폭력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당위 - '그래야 하는 이유'가 없습니다. 오직 '그렇게 할 수 있어서' 일어난 일일 뿐이라거죠. 자유민인 주인공에게 닥친 난데없는 노예생활이, 아니 흑인노예라는 제도 자체가 그러합니다. 분명히 자유인인데 그가 노예가 된 것은 그것이 어떠한 '그래야 할' 것이 아니라, 그저 '그렇게 할 수 있어서' 일어난 일인 것이죠. 마찬가지로 최초로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끌려온 노예와 그의 후손들이 그러합니다. 그들은 끌려와야 할 '이유'가 없지만, '그렇게 할 수 있기에' 그렇게 되었을 뿐입니다. 노예제도의 불합리성은 거기에 있습니다.
2. 노예제도는 또한 권력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노예제도는 실질적으로 미국 남부의 하층민들 - 내 밑에 이런 노예 떨거지들이 있다 - 라는 알량한 만족감을 위해서 존재했다는 얘기도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노예에 대한 물리적인 폭력은 그렇게 해야하기 때문이나 그것이 효율적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할 수 있어서,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에서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기 때문이겠죠. 그들 역시 노예가 인간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짐승 취급해도, 때려도, 강간해도,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삼아도, '되니깐요'. 그런 폭력을 행사하는 매 순간 가해자들은 권력을 증명하고 구현하는 것입니다. 라스꼴리니코프가 자신의 초인성을 시험하기 위해서 사람을 죽였듯.
3. 노예제도를 얘기하면 기독교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화에서는 성경을 봉독하는 장면이 세번 등장합니다. 조금 좋은 주인인 포드(베네딕트 컴버배치 분)이 두 번 읽는데, 첫 장면에서는 흑인 노예들보고 도망치라고 놀리는 노랫소리와 겹쳐서, 두번째는 흑인 노예가 흐느껴 우는 소리와 겹쳐서 나옵니다. 포드는 확실히 좋은 주인입니다.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노예들 앞에서 성경을 읽어주며, 그들에게 복음을 설파합니다. 노예제도 문제가 있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딱히 그것을 행동으로 개혁해내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묵인, 또는 남들은 나쁘게 대하지만 나는 착하게 대하고 있다는 일종의 도덕적 우월감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나는 깨끗하니 되었다' 라는 그 태도는 결코 사회를 바꾸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몇백년간 그 불합리한 제도가 자유를 찾아 유럽을 떠난 청교도들의 사회에서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이겠죠.
세번째 성경 봉독은 두번재 주인인 엡스(마이클 패스벤더 역)가 읽어줍니다. 그는 성경을 곡해해서 읽고, 그것을 통해서 노예들이 자신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설파합니다. 사회제도의 불합리함을 종교적 당위성으로 방어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런 아전인수적인 해석을 방치하는 종교의 모습 역시 참된 모습은 아닙니다. 첫번째에서 언급했었던 그런 유형의 - 나만 잘하면 된다 라는 - 태도로 방관하였던 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겠죠.
4. 죽은 노예의 장례식에 Roll Jordan Roll을 부르는 씬이 기억에 남습니다. 주인공은 처음엔 그 영가를 따라부르지 못합니다. 따라 부를 수가 없죠. 불합리한 제도를 정당화하는데에 사용되는 그 종교의 노래를 따라 부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노예들이 다같이 부르는 그 노래는 계속 진행되고, 그 와중에 주인공 솔로몬은 터져버립니다. 감정이, 신에 대한 원망과 그동안 쌓아왔던 한이, 억울함이, 그러면서도 동시에 신 말고는 매달릴 것이 없기에 그 감정은 목마름으로, 매달림으로, 그리고 부르짖음의 눈물로 변하게 됩니다. 그 일련의 과정을 2분 남짓한 클로즈업 롱테이크로 잡아낸 감독의 감각은 탁월했고요.
흑인영가라는 '장르' 그 자체가 가지는 진정성이란 이런 것일겁니다. 신에 대한 원망과 갈망이 그 공동체 속에서 노래로 승화된 장르일테니깐요.
5. 2013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은 괜히 받은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상 받을만한 영화라는 건 이런 영화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래비티가 못받은 건 아쉽지만, 감독상은 받았으니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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